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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5.07.25] 창경궁& 창덕궁...

 
요약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123호
지정일 1963년 01월 18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2-1) 지도
시대 조선
종류/분류 궁궐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덕종·예종)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으로 1483년(성종 14) 2월부터 짓기 시작하여 1484년(성종 15) 9월에 완공되었다. 이때 지은 집이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 및 사성각 등이다.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이, 정전(殿)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이 지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고 나서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어, 그때마다 내전이 불탔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명정전을 비롯한 그 회랑과 그 앞문인 명정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등 외전과, 1834년(순조 34) 다시 지은 숭문당·함인전·환경전·경춘전·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등의 내전으로 나눌 수 있다.

궁의 배치를 보면, 동쪽 한가운데에 ‘’자 모양으로 불룩하게 나온 중심부분에 있는 중층삼간누문()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금천() 위에 놓인 옥천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명정문과 좌우 행랑채가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널찍한 뜰이 나오고, 그 일직선상의 중층으로 된 기단 위에 명정전이 있다. 홍화문 좌우의 행랑이 이 명정전까지 계속되면서 울타리를 이루어, 창경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명정문은 홍화문보다 높은 지대에 있고, 명정전은 명정문보다 한층 더 높은 곳에 있는데, 이러한 예는 창덕궁과 개성()의 만월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1909년(순종 3)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이 이루어진 이후인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 1일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두산백과에서 퍼옴)

 

 

 

 

 

 

 

 

 

 

 

 

 

 

 

 

 

 

 

 

 

 

 

 

 

 

 
 
요약
1405년(태종 5) 지어진 조선시대의 궁궐.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122호
지정일 1963년 01월 18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 지도
시대 조선
종류/분류 궁궐
크기 면적 434,877㎡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의 향교동()에 이궁()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殿)·선정전(殿)·소덕전(殿)·빈경당()·여일전(殿)·정월전(殿)·옥화당()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특히 1917년 대조전(殿)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소실되어 그 복구를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殿)을 비롯하여 강녕전 동·서 행각 등의 많은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두산백과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