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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5.06.28] 부산여행 1일차...

 
요약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에 있는 절.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1376년(우왕 2)
창건자 혜근
소재지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량리 416-3

고려시대 1376년(우왕 2)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 혜근()이 창건하였다. 혜근이 경주 분황사()에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가뭄이나 바람으로 근심하는 일이 없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곳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라 하였다.

그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이 중창하였다. 1974년 정암()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법당·용왕당(용궁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주지 정암이 1970년대에 중창하였다. 대웅전 옆에 있는 굴법당은 미륵전이라고 하여 창건 때부터 미륵좌상 석불을 모시고 있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기도하면 자손을 얻게 된다 하여 득남불이라고 부른다.

대웅전 앞에는 사사자 3층석탑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3m 높이의 바위(미륵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가 되고 6·25전쟁 때 해안경비망 구축으로 파괴됨에 따라, 1990년에 정암이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이 석탑을 세우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였다.

이밖에 단일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인 약 10m 높이의 해수관음대불, 동해 갓바위 부처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절 입구에는 교통안전기원탑과 108계단이 있고, 계단 초입에 달마상이 있는데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전한다.(두산백과에서 퍼옴) 

 

해동용궁사 - 송정해수욕장 - 감천문화마을 - 국제시장 

 

생각지못한 2일간의 휴가가 주어져 부산의 갈만한곳을 검색해 찾은곳이 해동용궁사...

 

 

 

 

 

 

 

 

 

 

 

 

 

 

 

 

 

 

 

 

 

 

 

 

 

 

 

 

 

 

 

 

 

 

 

 

 

해동용궁사 관람을 마치고 주변의 보리밥짐에서 점심을 먹고 가까운 송정해수욕장으로...

 

 

주차할만한곳을 찾지못해 이리저리...

 

지금은 사용하지않는 기찻길이있어 어릴적 살던 동네의 기찻길을 생각하며 올라보고...

 

 

예약한 숙소로 이동 주차를하고  부산지하철과 버스를 이용 감천문화마을로...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 문화 마을

 

출처

디지털부산문화대전-감천 문화 마을

명칭 유래

감천 문화 마을은 감천동의 마을 미술 프로젝트 사업이 명성을 얻으며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이 형성되던 시기에는 중구 보수동에 본부를 두었던 태극도() 교도가 집단 이주하며 형성된 마을이라 태극도 신앙촌으로 불렸다. 태극도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태극도 신앙촌 마을은 원래 천덕동 감내로, 1955년 8월 국유지인 천마산 중턱에 태극도 신자 800세대 4,000여 명이 이주 정착하며 형성된 태극도 신앙촌이었다. 1957년 구제 실시로 서구 직할 사하출장소가 설치되었고, 감천동이 감천 1동, 감천 2동으로 분동되었다. 1975년 10월 부산직할시 직할 사하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12월 사하출장소가 사하구로 승격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 문화 마을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극도 마을의 형성 근거가 된 태극도는 1918년 조철제()가 증산 사상에 기초하여 세운 종교로, 충청남도 안면도를 근거로 포교하여 무극도()를 세웠다. 1923년부터 3년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도창현 건영()에 교당을 짓고 포교하여 1929년 10만 교인으로 번창하였다. 1935년 일제의 철거령으로 사라졌다가 1945년 광복 이후 다시 포교 활동을 시작하며 1948년 보수동 1가에 본부를 두고 태극도로 교명을 바꾸었다. 당시 부산시에서 영도구 청학동으로 옮길 것을 권하였으나, 재정난 등으로 현재의 위치를 점거하게 된다.

감천 문화 마을은 저소득층 주거지로 낙후된 마을이었다.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인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사업과 2010년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인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사업으로 환경 정비와 벽화 사업이 이루어지며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화되었다. 천마산 기슭의 좁은 골목길과 저층형의 옛 주택들이 조화를 이루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주민 생활 개선과 작은 카페와 가게 등이 들어서며 감천 문화 마을로 알려졌다.

자연 환경

감천 문화 마을 동남쪽에는 천마산이 있고, 북동쪽에는 아미산과 연결되는 아미 고개가 있다. 아미 고개를 지나면 화장골로 유명했던 아미동 골짜기로 이어진다. 남쪽에는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구덕산이 솟아 있다.

현황

감천 문화 마을은 산기슭을 따라 밀집한 슬라브의 작은 집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다. 태극도 마을은 2009년 예술 창작 단체인 ‘아트팩토리인다대포’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마을 곳곳에 조형물 10 점 설치]에 참여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현재는 마을 곳곳에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인해 미관 개선 사업이 이루어지며 ‘부산의 마추픽추’로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를 닮은 마을, 또는 성냥갑 같은 집들이 레고를 쌓은 것 같다 하여 ‘레고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에 선정돼 문화 예술촌이 조성되고 있다. 마을의 빈집을 예술 창작실 혹은 갤러리로 개조하거나 북카페, 식당, 민박집 등으로 만들고, 마을 공터와 옥상을 생태 정원으로 바꾸는 등 주민 생활환경 개선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감정초등학교, 감천 2동 주민자치센터, 감천2치안센터, 사하구 종합 복지 회관, 태극도총본부, 남성사, 천덕사, 감천 2동 체육공원 등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뒤에 입구가있었는데 반대편으로 잠시 올랐다 다시 내려오기도...

 

 

 

 

 

 

 

 

 

 

 

 

 

 

감천문화마을 관람을 마치고 국제시장으로 이동 이곳저곳 둘러보고 간단한 먹거리로 저녁을 대신하고 지하철을 이용 숙소로...